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셰그라드 그룹 (문단 편집) ==== 체코슬로바키아 해체와 존속위기 ==== 탈사회주의라는 당면목표가 달성되고 1992년 12월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해체가 결정되었다. 문제는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된 이후 등장한 정치 지도자들은 비셰그라드 협력에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V4의 협력 동력이 상당히 약화되었다. 체코의 [[바츨라프 클라우스|클라우스]] 총리는 V4는 가난한 개발도상국 모임에 불과하며 다른 국가들에 비해 가장 발전하고 산업화되어 있는 체코에게 어울리지 않다는 체코 우월주의를 견지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V4 협력이 체코의 EU 가입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1994년 1월 프라하 NATO 정상회담에서는 평화동반자관계(PfP)가 천명되었다. 이는 V4의 기존 목표인 NATO 가입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이에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는 V4 그룹의 협력과 조율을 강조했지만, 체코는 V4협력이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여겼고 1월7일에 예정되어있던 V4 국방장관 회담에 불참을 선언했다. 더구나 체코는 비셰그라드 그룹의 협력이 경제교류관계로 충분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중부유럽FTA가 체결되자 체코는 V4가 더이상 불필요하다고 선언했다. 한편 슬로바키아의 메치아르(V. Meciar) 총리는 V4 협력의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권위주의적, 민족주의적이었고 친러시아적인 인사였다. 메치아르는 굳이 서구권의 이해에 슬로바키아가 말려들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슬로바키아는 점차 서구권과의 거리가 멀어져갔다. 결국 메치아르 집권시기에 슬로바키아는 EU가입과 NATO 확장 논의에서 배제됐다. 이에 따라 비셰그라드 그룹은 점차 해체 수순을 밟는 듯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회원국 정부간 관계는 계속 유지됐다. 폴란드와 헝가리는 비셰그라드 협력의 부활과 EU,나토 가입에 개별적인 접근보다는 하나의 단위로써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1995년 5월 비셰그라드 국방장관 회담에는 체코가 복귀하여 NATO 공동가입을 위한 논의가 재개되었다. 1997년에는 슬로바키아를 제외한 비셰그라드 그룹 3개국은 NATO의 공식 초청을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